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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리뷰

내생에 꼭 한번은 봐야할 영화 BEST 1 <에비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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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타 현재까지도 추앙받는 '레이디 퍼스트'

 

<에비타> 이 영화는 1940년대 페론 정권 때 20대 중후반의 나이로 영부인이된 에바 페론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1978년 뮤지컬 계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팀 라이스 작사, 앤드류 로버트 웨버 작곡한 공독작업한 작품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뮤지컬로 먼저 그 명성을 떨치게 되었는데요. 1978년 영국 웨스트 엔드에서 무려 2,900회의 공연을 했으며, 1979년 미국 브로드웨이에 진출, 이후 토니상 11개 부문에 7개의 상을 휩쓴만큼  뮤지컬 <에비타> 그리고, 그 주인공이 '에바페논'을 기억하는 이들이 전 세계적으로

늘어만 갔었고, 많은 이들이 '에바 페논'의 업적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 에비타가 아닌 에바 페논을 기억하라 ' 

 

뮤지컬과 영화의 소개에 앞서 '에바 페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한 사람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만큼 그녀의 군중을 위한 짧은 생을 기억해보는 것!  영화 <에비타>의 막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에바 페논의 출생'

 

1941년의 에바 두아르테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의 작은 마을 로스톨도스의 농장에서 부유한 농장주인 후안 두아르테와 그의 정부인 후아나 이바르구엔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후안 두아르테는 정식 부인이 따로 있었고, 후아나와의 사이에서 난 에바 및 다른 딸들을 법적으로 딸로 인정하지 않았다. 생부에게서 버림받은 에바는 모친 및 다른 자매들과 함께 곧 후닌으로 옮겨 그 곳에서 가난한 생활을 하며 지냈다.
그들은 후닌에서 한동안 방 한칸짜리 아파트에서 매우 가난하게 살았으나, 생모의 가족의 도움으로 더 큰 집으로 옮길 수 있었다. 에바는 학창 시절, 학교 연극과 연주회에서 재능을 발휘하며 주목을 받으며, 영화배우가 될 꿈을 키웠다. 에바는 15살인 1935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옮겨 연예계 진출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모델로 활동하다가, 연극배우, 영화배우, 라디오 성우 등으로 차츰 이름을 알려 1940년 경부터 유명 연예인이 되었고, 라디오 방송국을 소유하는 등 경제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결코 고운 시선으로 불리기힘든, '사생아'로 태어난 <에바>  어려운 환경속에서 '꿈'을 잃지 않고 배우가 되겠다는 목표는 있었지만, 가진것 없는 시골출신의 소녀 '에바'는 성공을 위해 자신의 아름다운 몸을 이용하게 됩니다.  성공을 위해 밑바닥 인생을 걸어오며 차츰 인정을 받게되고,  모델 활동을 거쳐 '꿈'에 그리던 배우가 됩니다.  드라마틱한 그녀의 삶은 실화라고 믿기 힘들만큼

애처롭기 그지없는데요.  이전 영화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었지만, '꿈은 희망고문이 아닙니다'  언제든 포기할 수 있고, 잠시 멈출수도 있지만 목표를 위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그녀의 인생은 결코 '희망고문'이 아니 었던 것이죠.

 

 

 

 

'에바 페논, 후안 페논과의 만남'

 

후안 페론과 함께 1944년, 산후안에서 지진이 발생하여 6천명 이상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육군 대령 출신으로 당시 정부의 노동부 장관이던 후안 페론은 이재민 구호를 위한 기금을 마련하려고 했으며, 이 때 에바 두아르테와 후안 페론은 처음 만났다. 첫 번째 부인을 잃고 독신으로 살던 후안 페론은 에바 두아르테의 젊음과 미모에 빠져들었으며, 두 사람은 곧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기금 마련으로 하층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 후안 페론은 곧 부통령 자리에 오르며 군부와 대중의 지지를 동시에 확보했다. 후안 페론과 에바 두아르테는 1945년 정식으로 결혼했으며, 그 다음해 대통령 선거를 준비했다.

 

성공은 오로지 노력만으론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운'  <에바>가 <페논>이란 '행운'을 잡지 않았다면 그녀의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었을 겁니다.  첫번째 부인을 잃고 독신으로 살아가는 그에게 젊고 아름다운 미모의 <에바>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로 보였을테지요.  결국 <에바>는 신데렐라가 되고 부통령에 오른 <페논>을 대중의 지지를 확대시켜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욕망을 내보이게 됩니다.

 

 

 

 

' <에비타>가 된 <에바페논>'

 

연설하는 에바 페론

에바는 남편의 선거 유세 자리에 동행하며 대중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에비타라는 애칭으로 불린 것도 이 무렵부터이다. 후안 페론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 1946년 6월 정식으로 취임했다.
에바는 정부 내에서 공식적인 직책에 오른 적은 없으나, 노동자 및 하층민들에게 후한 정책을 펼칠 수 있게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며 사실상의 보건부 장관 자리에 있었다. 1947년에는 유럽 여러 나라를 방문하였으며, 대통령인 남편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스페인에서는 가난한 아동들에게 구호 활동을 펼쳤고, 프랑스에서는 샤를 드 골 을 만나 식량 지원을 약속했다.
한편 정의당의 분파인 여성 페론당을 결성하여 그 대표로 있었으며, 이를 통하여 여성 참정권 도입 등의 여성 운동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노동단체, 기업 등의 헌금으로 운영되는 에바페논 재단 을 설립하여 그 대표를 겸했다. 에바 페론 재단의 기금은 학교, 병원, 양로원 등을 건립하고 각종 자선사업을 하는 데 쓰여지며 민중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상류층 및 군부와의 관계는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린 것인가? 국민들로부터 <에비타>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에바 페논>은 <후안 페논>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하자 본격적으로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에비타>는 대통령인 <후안 페논>보다 더 많은 관심속에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되는데요.  여성 페론당 결성, 에바페논 재단 설립과 서민을 위한 자선사업은 그녀를 지금까지도 추대되는 '레이디 퍼스트'의 시발점이 된 것입니다.  '에바 페논'이란 이름보다 <에비타>란 애칭이 더욱 와닿는건 이때문이 아닐까요?

 

 

' 에비타의 사망'

 

차츰 그의 개혁에 대한 모순이 드러나는 가운데, 그는 1950년, 자궁암 진단을 받았다. 건강이 차츰 악화되어 가는 가운데, 1951년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그러나 군부는 부통령 지명을 철회하도록 강요하여, 10월 부통령 후보 자리에서 물러났다. 11월 대선에서 남편은 재선에 성공했으나, 에바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어 갔다. 그 다음해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되기 전에 남편은 그를 '영적 지도자'의 자리에 올렸다. 그러나 그의 암은 상태가 더욱 나뻐져, 1952년 7월 26일 33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국민의 애도 속에 국장이 치러졌고, 이후로도 국민들은 그를 외경스러운 존재로 기억했다. 아르헨티나는 그에 대한 평가로 이후 큰 혼란을 겪게 되며 노동자와 민중에서는 그를 성녀로 추대하려는 시도를 한 반면, 그의 정적들은 국민들에게서 그의 흔적을 없애기 위하여 노력했다. 이런 가운데 개혁의 모순으로 인하여 남편은 정치적 궁지에 몰렸으며, 결국 1955년 쿠데타로 축출되었다. 쿠데타로 집권한 새 정부에서 먼저 한 일은 페론주의의 상징인 그를 아르헨티나 정계에서 몰아내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방부 처리되어 있던 그의 시신을 은닉하여 이탈리아로 빼돌렸다. 1971년 시신은 스페인에 망명중이던 후안 페론측에 인도되었고, 1975년 후안 페론의 다음 부인인 이사벨 페론이 대통령이 된 후 아르헨티나로 송환하여 대통령궁에 안치하였다. 그러나 다시 쿠데타가 일어난 후 군사정권은 유해를 제거했으며, 유해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레콜레타 구역의 공동묘지의 두아르테 가족묘지에 안장되었다.

 

할일이 아직도 많이 남은 그녀이지만, 신은 33세라는 젊은 그녀를 데려가고 마는군요.  33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그녀 <에비타> 많은 것을 이루었으나 많은 것을 잃기도 한 그녀는 죽어서까지 잠정적으로 편한 생을 마감할 수는 없었는데요. <후안 페논>의 반대세력으로 인해 1952년 생을 마감했으나 그녀의 시신은 1975년에 가족묘지에 안장되기까지 많은 일화가 있었네요.

 

'페론주의'를 내걸어 국민들에게 '성녀'라 불리지만, 반대파로부터 인기에 영합한 악녀라는 오명을 얻기도한 <에비타>

 

 

'영화 <에비타>와 마돈나 '

 

1996년 알란 파커 감독에 의해 뮤지컬 <에비타>는 영화로 만들어집니다. 감독은 <에바페논>역으로 '마돈나'를 적극 영입에 추친하지만, 성녀 <에바 페논>역으로 섹시심벌인 '마돈나'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에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반대운동이 적극적으로 일어나게 되죠.  하지만, 마돈나의 캐스팅은 최적의 선택이었습니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녀>의 연기에 극찬을 아끼지 않을마큼

그녀는 <에비타> 였습니다.  수많은 뮤지컬 공연이 펼쳐졌지만, 저는 영화속 마돈나 <에비타>만큼 열혈연기를 한 사람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 영화를 본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에비타> 감동이었습니다 '

 

 

▶죽음을 지켜주기 위해 몰려둔 군중들에게 - ‘Don't Cry For Me Argentina’

 

 

‘Don't Cry For Me Argentina’

 


It won't be easy, you'll think it strange

쉽지는 않겠죠, 여러분은 이상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When I try to explain how I feel

내가 어떤 기분인지 설명하려면

That I still need your love after all that I've done

이 모든 것을 이룬 후에도 여전히 여러분의 사랑이 필요하다면

You won't believe me

믿기 힘들 거예요

All you will see is a girl you once knew

여러분 눈에는 예전에 알았던 소녀로만 보이겠죠.

Although she's dressed up to the nines

멋지게 차려 입고 있지만


 

I had to let it happen, I had to change

난 이렇게 해야 했어요, 난 변해야 했어요.

Couldn't stay all my life down at heel

평생을 밑바닥에서 헤맬 수는 없었어요.

Looking out of the window, staying out of the sun

창밖을 내다보며, 태양 빛에서 벗어나

So I chose freedom

그래서 난 자유를 택했죠.

Running around, trying everything new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새로운 것들을 경험해 봤죠.

But nothing impressed me at all

하지만 그 무엇도 날 감동시키지 못했어요.

I never expected it to

그럴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Don't cry for me Argentina

날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

The truth is I never left you

진실은 내가 여러분을 저버린 적이 없다는 거예요

All through my wild days

그 모든 광란의 날들을 보내며

My mad existence

이 미칠 것 같은 삶 속에서도

I kept my promise

난 약속을 지켰어요.

Don't keep your distance

그러니 날 멀리 하지 말아요.

 

And as for fortune, and as for fame

그리고 부와 명성은

I never invited them in

내가 추구했던 게 아니었어요.

Though it seemed to the world they were all I desired

비록 세상 사람들은 내가 그것들만 원했다고 생각하지만

They are illusions

그것들은 환상에 불과하죠.

They're not the solutions they promised to be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진정한 해결책이 못 된답니다

The answer was here all the time

대답은 항상 이곳에 있었어요.

I love you and I hope you love me

난 여러분을 사랑하고, 여러분도 날 사랑해 주길 바래요


Don't cry for me Argentina

날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

Have I said too much?

제가 너무 말이 많았나요?

There's nothing more I can think of to say to you

더 이상은 할 말이 생각나지 않네요.

But all you have to do is look at me to know

하지만 날 보기만 하면 알 거에요

That every word is true

내가 하는 말이 모두 진실이라는 걸

 

 

뮤지컬이란 낯선 장르를 영화한 영화 <에비타>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이영화는 호불호가 많이 가려질 듯 한데요.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이 영화를 '꼭 한번은 봐야할 영화'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국민을 위한 국민을 향한 그녀의 애국정신이 많은 영감을 주는 <에비타>

 

'티브로그의 추천 영화 BEST 1으로 감히 추천 드립니다'